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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순

2026.06.02 (화)

분열을 넘어 복음의 일치로

고린도전서(1 Corinthians) 1:10 - 1:17

(본문: 개역한글)
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12 이는 다름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14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15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6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고 그 외에는 다른 아무에게 세례를 주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묵상 가이드 (by IXTHUS AI)

본문 개요

지중해의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항구 도시 고린도는 고대 세계의 모든 풍요와 타락, 그리고 화려한 지식의 흐름이 교차하는 거대한 용광로와 같았습니다. 동양과 서양을 잇는 이 역동적인 상업 도시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지위를 증명하고, 더 유력한 후원자를 찾아 줄을 서며, 웅변가들의 화려한 말솜씨에 열광하곤 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토양 속에서 태어난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은사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의 가치관을 교회 안으로 고스란히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은혜마저도 서열화하고, 자신을 이끌어 줄 인간 지도자의 이름을 내세우며 분열의 길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머물던 중, 글로에의 집안사람들을 통해 들려온 고린도 교회의 소식은 참으로 가슴 아픈 것이었습니다. 교회는 이미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고 가장 영적이라고 자부하는 그리스도파로 갈라져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이 편지는 단순히 교회의 행정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침서가 아니라, 세상의 자랑에 눈이 멀어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린 성도들을 향해 눈물로 호소하는 아비의 심정이 담긴 사랑의 편지입니다. 바울은 이 갈등의 한복판에서 인간 지도자들의 이름을 지우고, 오직 교회에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다시 세우고자 합니다.

본문 해설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할 대상을 찾아 헤매는 존재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영적인 지도자들의 이름을 자신들의 신분증처럼 사용하며 부와 지혜를 자랑하려 했습니다. 개척자인 바울의 영적 권위를 탐내고, 아볼로의 수려한 웅변력을 숭상하며, 수제자 베드로의 정통성에 기대어 자신들의 영적 우월성을 입증하려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실존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도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서도, 동시에 내가 속한 집단의 크기나 내가 따르는 지도자의 명성에서 나의 가치를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결국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하나님의 주권을 훼손하는 영적 교만일 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비극적인 분열을 향해 단호하게 묻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고, 바울이 너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느냐고 말입니다. 이 질문은 교회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엄중하게 선언하는 영적인 외침입니다. 교회는 인간의 사상이나 기호에 따라 모인 동호회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사신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결코 찢어질 수 없으며, 우리가 받은 구원은 어떤 인간 지도자의 공로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주권적인 선택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대상은 복음의 통로 역할을 했던 연약한 인간이 아니라, 그 통로를 통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에서 세례를 많이 주지 않은 것을 감사한다고 고백하는데, 이는 성례 자체를 경시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의 방편인 세례마저도 인간들이 계파를 나누고 자신을 자랑하는 도구로 전락시키는 영적 어리석음을 경계한 것입니다. 인간은 가장 거룩한 의식 속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집요한 자기중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스데바나 집 사람들과 몇몇 외에는 세례를 베풀지 않았음을 상기시키며, 복음의 본질이 외적인 의식이나 인간의 영향력에 갇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나에게 물을 뿌려준 사람이 누구인가에 있지 않고, 나를 위해 물과 피를 쏟으신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명이 화려한 말의 지혜로 복음을 포장하는 데 있지 않고, 오직 십자가를 있는 그대로 전하는 데 있다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말의 지혜란 당시 그리스 사람들이 열광하던 수사학과 철학적 논증을 의미합니다. 만약 복음이 인간의 세련된 논리와 감동적인 강연으로만 전파된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 신비로운 구원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한낱 인간의 사상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원어의 의미를 살펴보면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한다는 것은 십자가의 알맹이를 비워버려 아무런 효력이 없게 만들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지혜를 부끄럽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가장 깊은 지혜이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유일한 능력입니다. 우리가 인간의 자랑을 멈추고 십자가 앞에 겸손히 엎드릴 때, 비로소 교회는 갈등을 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하나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 기도 제목

세상의 자랑과 인간적인 기준을 내려놓고 오직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바라보며,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하나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