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항
1항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는 일을 위하여 교역자들을 사용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교역자들을 사용하시어 자신을 위한 교회를 모으시기도 하시고 세우시기도 하시고 통치하시기도 하시고 보존하시기도 하셨다. 교회가 이 지상에 있는 한 하나님은 현재와 미래에 있어서 이처럼 교역자들을 사용하신다. 그러므로 교역자들이 처음 생겼고 제도화되었고 그 직무수행이 진행된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지 인간이 한 것이 아니다. 그러면 이 교역자의 제정과 기원은 어떠한가?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고 직접 그의 능력으로 세상 중에서 교회를 자신과 연합시키실 수 있으나 인간의 교역을 통해서 인간과 관계 맺는 것을 더 좋아하신다. 그러므로 교역자들이란 자기 자신들에 의해서 교역자로 간주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들을 통하여 인간의 구원을 일으키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역자들로 간주되어야 하는 것이다.
2항
2항
[교역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회심과 교육에 관한 일을 성령의 은밀한 사역으로 돌리면서 교회적 교역을 헛된 것으로 만들지 않는 방법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항상 다음과 같은 사도의 말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롬10: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리고 주님이 복음서에서 말씀하신 것도 우리는 기억하는 것이 좋다. "(요13: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마찬가지로 바울이 아시아에 있을 동안 환상 중에 나타난 마게도냐 사람도 은밀히 바울에게 충고하기를 "(행16: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고 했다. 또한 동일한 사도가 다른 곳에서 "(고전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우리는 너무 많은 부분을 교역자들과 교역에 돌리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복음서에 나타난 주님의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요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사도의 말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고전3: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고전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으로 우리를 가르치시는데, 외적으로는 그의 교역자들을 통하여 내적으로는 성령에 의하여 그의 택하신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하시고 조명시키시사(이끄심) 신앙에 이르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든 은혜에 대하여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그런데 이 문제에 관하여는 본 신앙고백서의 제 1장에서 논했다.
3항
3항
[교역자들이란 누구며 하나님은 어떤 종류의 교역자들을 이 세상에 주셨나?]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이 시작될 때부터 가장 뛰어난 사람들을 온 세상을 위해서 사용하셨다(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세상적 지혜와 철학에 있어서는 단순하였으나 참 신학에 있어서는 뛰어났다). 이들은 바로 족장들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하여 이들과 말씀하셨다. 족장들이란 자기들의 시대의 예언자들이요, 교사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유에서 이들이 여러 세기를 살기를 원하셨으니, 그 목적은 이들이 사실상 세상의 조상과 빛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들을 계승한 이들은 모세와 온 세상이 알고 있는 유명한 예언자들이다.
4항
4항
[교사이신 그리스도]
위의 교역자들을 보내신 후 하늘의 아버지는 세상의 가장 완전하신 교사이신 그의 독생자를 보내셨으니, 이분 안에 하나님의 지혜가 감추어져 있고, 이 지혜는 가장 거룩하고 단순하고 가장 완전한 교리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자신을 위하여 제자를 선택하시어 그의 사도들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이 사도들은 세상 속으로 들어갔고, 복음 설교를 통하여 도처에 교회들을 세웠고, 그리스도의 명성을 따라 지중해 연안에 있는 모든 교회에 목사 혹은 교사를 임명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들의 계승자를 통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교회를 다스리시고 가르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백성들을 위하여 족장들과 모세와 예언자들을 주신 것같이 신약의 백성들에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과 교회의 교사들을 주셨다.
5항
5항
[신약 성경의 교역자들]
신약에서의 교역자들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일컬어진다. 이들은 사도들, 예언자들, 복음전도자들, 감독들, 장로들, 목사들, 교사들이라고 일컬어졌다. 사도들은 한 지역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고 지중해 연안을 두루 다니면서 여러 교회를 세웠다. 일단 사도들이 교회를 세우면 이들의 임무는 끝났다. 목사들이 교회들을 각각 맡았다. 예언자들이란 옛날에 미래를 꿰뚫어보는 자였고, 성경을 해석하는 자이기도 했다. 이러한 사람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있다.
복음서를 기록한 사람들은 복음 전도자라 불리어졌는데 그리스도의 복음의 전령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딤후4: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권고하였다. 감독이란 교회를 돌보는 자요, 감독하는 자요, 교회의 식량과 모든 삶의 필요를 맡아본다. 장로들은 연장자라고 불리워지기도 했는데 사실상 교회의 성도들의 대표들이요, 아버지들로서 교회를 건전한 충고와 지혜로써 다스린다. 목사들은 주님의 양무리를 지키고 양떼들의 필요를 공급한다. 교사들은 참 믿음과 경건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교회의 교역자란 감독, 장로, 목사 및 교사라 불리어진다.
6항
6항
[교황의 성직체제]
그 후 하나님의 교회 안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교역자들이 생겼다. 어떤 교회는 사교(司敎:patriarchs)를 택하였고, 다른 교회는 대주교(archbishops)와 부감독을 두었고, 또한 대감독(metropolitans), 주제(主祭:archdeacons), 부제(副祭:deacons), 부조제(副助祭), 시제(acolytes), 귀신을 쫓아내는 기도사, 성가대의 선창가(cantors), 수문(doorkeepers), 그리고 이외에 어떤 성직이 또 있는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으나 추기경(cardinals), 사제장(provosts), 그리고 상급 신부와 하급 신부 및 소수도원의 원장 등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교직이 전에는 어떠했고 지금은 어떠한가에 대하여 더 이상 논의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교역자들에 대한 사도들의 교리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7항
7항
[수도승에 관하여]
수도승이나 수도 승단들이나 분파가 그리스도나 사도들에 의하여 제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실히 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교회에 유익이 되기는커녕 해롭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가르친다. 그도 그럴 것이 옛날에는 이들이 용납될 수도 있었으나(이들이 은둔자들로서 자신들의 손으로 생계를 해결했고, 그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았고, 일반 성도처럼 도처에 흩어져 있으면서 교회의 목사에게 순종했을 경우) 지금에 와서는 온 세상 사람들이 이들이 어떻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수도원 입원을 위한 서약을 한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이 서약과 다르게 영위되고 있다. 따라서 이들 중 최선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도 사도가 비판한 유의 사람과 같다. "(살후3:11)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교회들 안에 그러한 사람들이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필요도 없다고 가르친다.
8항
8항
[교역자들은 부름 받아야 하고 택함을 받아야 한다]
아무도 교역자들의 영예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즉 그 누구도 그것을 뇌물이나 어떤 사기에 의하여 취해서도 안 되고 자율적인 자유선택에 의해서 택해서도 안 된다. 반드시 교회의 교역자들은 합법적인 교회의 선거에 의하여 부름 받아 선출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교회 혹은 무슨 소란이나 분쟁이나 경쟁이 없이 질서 있게 선출하기 위하여 뽑혀진 교회의 대표들이 이 교역자들을 조심성 있게 선출해야 한다. 아무나 선출되어서는 안 된다. 충분히 헌신된 학식, 경건한 웅변, 간교함이 없는 지혜, 끝으로 절제와 좋은 평판에 있어서 뛰어난 유능한 사람들을 선출해야 한다. 즉, 우리는 사도 바울이 디모데 전서 3장과 디도서 1장에서 제시한 사도적 규범을 따라야 한다.
9항
9항
[안수]
선출된 사람들은 장로들에 의하여 안수를 받는데, 공중기도와 손을 얹어놓음으로 행해진다. 우리는 여기에서 선출 받은 바도 없고 파송 받은 바도 없으며 안수 받은 바도 없으나 자기들 마음대로 교역에 임하는 사람들을 정죄 한다. 또한 우리는 부적합한 교역자들과 목사가 갖추어야 될 꼭 필요한 은사들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을 정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초대교회의 어떤 목사들의 해 없는 어떤 단순성이 어떤 이들의 다방면적이고 세련되고 까다롭고 약간은 비밀스러운 학식보다 교회를 위해서 더 유익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오늘날에도 어떤 이들의 정직한 단순성을 거부하지 않는다. 물론 무식해도 괜찮다는 말은 아니다.
10항
10항
[만인제사장직]
확실히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제사장이라 일컫는다. 그러나 제사장이라고 하는 직책을 받아서 그렇게 부른 것이 아니라 모든 신자들은 이미 왕과 제사장이 되었으므로 신자들인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적 제사들을 드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제사장직과 교역자직은 크게 다르다. 방금 지적한 대로 제사장직은 모든 크리스천들이 공유하고 있으나 교역자직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교황의 제사장직을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제거시켰다고 해서 교회의 교역자직을 폐지시킨 것은 아니다.
11항
11항
[제사장들과 제사장직]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새 언약에 있어서는 구약시대에 있었던 제사장직이 없어졌다. 이 구약은 제사장직에 관련하여 외적인 기름부음, 거룩한 외투 및 여러 가지 의식을 말하고 있는데, 이미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나타내기 위한 의식들을 그의 오심과 그의 성취에 의하여 폐기하셨다. 그러나 그리스도 자신은 영원히 유일한 제사장으로 남으신다. 따라서 만일 어떤 목사에게 이 제사장의 이름을 부여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주님 자신은 신약의 교회를 위하여 어떤 제사장도 결코 세운 적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말씀을 설교하고 성례전을 베풀 교역자들을 세우신 것이지 부감독으로부터 권위를 위탁받아 주님의 참 살과 피를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하여 희생 제물로 매일 제사하는 제사장을 세우신 것이 아니다.
12항
12항
[신약이 말하는 교역자들의 본성]
바울은 신약성경 혹은 기독교회의 교역자들에 관하여 간단명료하게 언급한다. "(고전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래서 사도는 우리들이 교역자를 교역자로 생각하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사도는 교역자를 '노 젓는 사람'이라 부르면서 이 노 젓는 사람은 그의 눈을 키잡이에 고정시켜야 한다고 하고, 이 교역자란 자신들을 위해서 혹은 자기들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이라 하였다. 즉, 이 교역자들은 전적으로 주님의 명령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교회의 모든 교역자는 그들의 모든 의무수행에 있어서 자신의 뜻대로가 아니라 주님께로부터 받은 명령을 수행하도록 명령받은 것이다. 이 경우 주님이란 그리스도이신바 교역자들은 교역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이 그리스에게 복종해야 한다.
13항
13항
[하나님의 비밀은 맡은 청지기로서 교역자들]
그 뿐만 아니라 사도는 교역자직을 더 충분히 설명하기 위해서 교회의 교역자들이란 하나님의 신비를 관리하고 보존하고 베풀어주는 청지기들이라고 덧붙였다. 바울은 여러 군데에서 이 하나님의 비밀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복음이라 하는데 에베소서 3장이 특히 두드러진다. 그래서 교부들은 그리스도의 성례들을 신비라 일컬었다. 이 목적을 위해서 교회의 교역자들은 부름을 받았다. 즉,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 설교하고 성례전을 베풀기 위하여 부름을 받았다. 복음서에서 우리는 "(눅12:42) 주께서 가라사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라고 하는 말씀을 발견한다. 복음서의 또 다른 곳에 보면 한 사람이 외국으로 여행 가는데 그의 집과 재산과 그것을 다스릴 권한을 그의 종들에게 주었고 각각에게 할 일을 맡기셨다고 한다.
14항
14항
[교역자의 권한]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교역자들의 권한과 의무에 대해서 몇 가지 언급해야 할 줄 안다. 어떤 이들은 이 권한에 관하여 열심히 주장하면서 이 지상 최고의 것들까지 이 권한에 복종시킨다. 이것은 주님의 명령과 정반대되는 것이다. 우리 주님은 제자들에게 군림하는 자세를 금하시고 겸손을 천거하셨다. 교직의 권한은 순수하고 절대적인 바 "의의 권한"이라 불리운다. 이 권한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모든 것의 주님이신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킨다. 주님 자신의 증거를 들어 보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 "(계1:18)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계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15항
15항
[참 권한은 주님의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 교역의 권한을 소유하고 계신다. 주님은 그의 교역자들이 교역하는 동안 구경꾼으로 빈둥빈둥 지내시기 위하여 이 교역을 인간들에게 넘기신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사야가 "(사22:22) 내가 또 다윗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사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주님은 다스리는 일을 다른 사람들의 어깨에 메어 두지 않고 스스로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데 있어서 그의 권세를 보존하시고 사용하신다.
16항
16항
[교역자직의 권한]
교역직의 또 하나의 권한이 있는데, 이것은 완전하고 절대적 권한을 가지신 주님에 의하여 제약을 받는다. 이 권한은 군림이 아니라 섬김이다. 이는 열쇠의 권한이다. 주인은 그의 권한을 청지기에게 전적으로 일임하였기에 그에게 열쇠를 주어 그로 하여금 그의 주인의 뜻대로 들여보낼 자를 들여보내고 제외시킬 자를 제외시키게 하는 것이다. 교역자는 이 권한에 의하여 직책수행상 주님께서 명령하신 바를 행하는 것인데, 주님은 그의 교역자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이 교역자가 행한 바를 마치 자신이 행하신 것으로 간주해 주시고 인정해 주시는 것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복음서의 말씀들은 바로 이러한 내용을 말하고 있다. "(마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요20:23)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만약에 교역자가 주께서 명령하신 대로 모든 것을 행하지 않을 경우, 주님은 그가 행한 것을 무효화할 것이 확실하다. 그러므로 교역자가 주께로부터 부여받은 교회적 권한은 그것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다스리는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역자들은 주께서 그이 말씀에 규정해 주신대로 교회의 모든 일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행할 때 신자들은 마치 주님 자신이 행하시는 것으로 여긴다. 우리는 위에서 이미 열쇠의 권한에 대하여 언급했다.
17항
17항
[교역자들의 권한은 하나며 동일하며 동등하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교역자들은 동일하고 동등한 권한 혹은 기능을 부여받았다. 확실히 고대 교회에서는 감독들이나 장로들이 교회를 함께 다스렸다. 이 시대에는 아무도 다른 사람보다 높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어느 감독이나 장로도 다른 동료 감독이나 장로보다 더 큰 권한이나 권위를 행사하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에 "(눅22:26)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를 기억하기 때문에 저들은 계속 겸손을 유지했으며, 교회를 다스리거나 보존하는 일에 있어서 상호 봉사로서 서로 도와주었다.
18항
18항
[질서는 보존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서의 보존을 위하여 교역자들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이 회중을 소집하여 문제들을 이 회중 앞에 내어놓고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간단히 말하면 어떤 무질서가 일어나지 않도록 그들은 그들의 최선을 다했다. 우리가 사도행전에서 읽는 대로 베드로는 비록 그의 그와 같은 지도적 위치와 행위 때문에 예수님의 총애를 다른 제자들보다 더 받은 것도 아니었고 다른 제자들보다 결코 더 큰 권위를 부여받은 것이 아니었으나 그렇게 행동하였다. 그는 다른 제자들과 동등하면서 의장직을 맡아 행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순교자 키프리안이 그의 저서 <교역자들의 단순성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것은 옳다. "다른 사도들도 베드로와 꼭 같은 영예와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베드로의 의장권(수위권)은 교회의 일치(질서)를 이룩하기 위한 통일성의 원리에 입각한 것이다.
19항
19항
[한 사람이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경우와 그 양상]
제롬 역시 바울의 디도서를 주석하면서 위와 같은 사실과 어긋나지 않는 말을 했다. 즉, "장로들의 협의와 합의에 의하여 교회들은 다스려져 왔었다. 종교에 있어서 어느 특정 개인들에게 집착하는 것은 마귀의 짓이다. 그런데 각 사람이 자신이 세례 준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가 아니라 자신의 소유로 생각한 이후 장로들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을 선출하여 다른 사람들보다 위에 있게 하였고, 이 한 장로에게 교회 전체의 돌봄을 맡겨야 했고 모든 분열의 씨앗을 제거하는 제도가 나왔다".
그러나 제롬은 이 규정을 신적인 것으로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즉시 다음과 같이 덧붙여 말하기 때문이다. "장로들은 교회의 관례로부터 자신들이 자신들 위에 세워진 장로에게 순복할 것을 알았듯이 감독들은 자신들이 장로들 위에 있다고 하는 사실을 주님이 정해 주신 진리로부터라기보다도 교회의 관례로부터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관례보다는 진리에 입각해서 감독들은 장로들과 더불어 교회를 다스려야 할 것이다". 제롬이 말한 것은 이 정도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가 지녔던 고대 헌장으로 돌아가야 하고 인간의 관습이 생기기 이전의 내용에 호소하고 의존해야 한다.
20항
20항
[교역자들의 의무들]
교역자들의 의무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대체로 두 가지에 국한하는데 이 두 가지 속에 나머지가 포함되어 있다. 그 두 가지란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치는 것과 성례전(세례와 성만찬)을 집행하는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예배를 위하여 회중을 모으고 여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풀이하고, 이 말씀의 모든 가르침을 교회를 돌보며 교회를 유익하게 하는 일에 적용함으로 선포된 말씀이 듣는 자들에게 유익을 주게 하고 믿는 자들을 세우는 것이 바로 교역자들이 해야 할 의무이기 때문이다. 또한 교역자는 복음과 성경에 무식한 사람을 가르쳐야 하고 권고해야 하고, 게으른 자들과 망설이는 자들로 하여금 주님의 길을 계속 따르도록 강권해야 한다. 우리 생각엔 이것 역시 교역자의 의무라고 말하고 싶다.
그 뿐만 아니라 교역자들은 마음이 약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야 하고, 사탄의 여러 가지 시험에 넘어가지 않도록 이들을 무장시켜야 하고, 범법자들을 견책하고, 과오에 빠져 있는 자들을 올바른 길로 불러내고, 넘어진 자들을 일으켜 주고, 주님의 양무리로 부터 이리를 쫓아내도록 힘쓰고, 사악과 사악한 자들을 지혜롭고도 엄격하게 질책해야 하고, 큰 사악에게 눈짓을 해서도 안 되고 이 큰 사악을 묵과해서도 안 된다. 이것 이외에도 그들은 성례전을 베풀어야 하고 이 성례전을 옳게 사용하도록 가르쳐야 하고 건전한 가르침에 의하여 준비시킴으로 이 성례전을 받게 해야 하고, 신자들의 거룩한 일치를 보존해야 하고 분열을 막아야 하고 복음과 성경에 무식한 사람들을 가르쳐야 하고, 교회의 가난한 사람들을 돌봐야 하고 병든 자들과 여러 가지 시험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심방하고 가르치고 생명의 길로 계속 인도해야 한다. 이것에 이어 교역자들은 어려운 일에 처할 때마다 공동체적 금식을 실천하면서 공동체적 기도모임에 참여하고, 교회들의 안정과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 부지런히 정진해야 한다.
그러나 교역자가 이 모든 일들을 더 잘 수행하고 더 쉽게 수행하기 위하여 그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고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하고 영적 서적을 열심히 읽어야 하고 모든 일에 있어서, 그리고 항상 정신 차려야 하고 순결한 삶을 삶으로 모든 사람들 앞에 빛을 비추어야 한다.
21항
21항
[치리(권징)]
치리(治理)란 교회 안에 꼭 있어야 한다. 교부들의 시대에도 파문(출교)이 실천된 적이 있다. 그리고 교회적인 심판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적용되곤 하였다. 이 경우 지혜롭고 경건한 사람들이 치리를 행사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교역자들은 상황(시대성, 사회성, 필요성)에 따라 교회의 건덕을 위한 치리를 행사해야 한다.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적절히 행하고 영예롭게 행하되 억압과 다툼은 피해야 한다는 법칙을 우리는 지켜야 한다.
왜냐하면 사도의 증언에 의한즉 주님께서 자기에게 교회의 권위를 주신 목적은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지 교회를 파괴하기 위함은 아니기 때문이며, 또한 그 이유는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까지 뽑아 버릴까 하기 때문이다.
22항
22항
[심지어 사악한 교역자의 말까지도 들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도나티스트주의자들의 오류를 몹시 싫어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성례전에 대한 가르침과 집례가 교역자들의 삶의 좋고 나쁨에 따라 효력이 있기도 하고 효력이 없기도 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마23: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고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음성이 사악한 교역자들이 입을 통해서 나오더라도 그것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을 안다. 성례전이란 그리스도의 제정의 말씀에 의하여 성화되기 때문에 비록 합당치 못한 교역자들이 그것을 베풀더라도 믿는 성도들에게 효력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하여는 하나님의 축복 받은 종 어거스틴이 성경에 근거하여 여러 차례 도나티스트들을 반박하였다.
23항
23항
[노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역자들을 위해서도 적절한 치리가 있어야 한다. 노회들은 교역자들의 가르침과 삶을 주의 깊게 검토해야 한다. 교정될 만한 범법자들은 장로들에 의하여 견책 받아야 하고 올바른 길로 인도되어야 한다. 만약 교정이 불가능한 사람들은 추방되어야 한다. 마치 참 목자들이 주님의 양무리로 부터 이리들을 추방하듯이, 왜냐하면 이들이 거짓 선생들일 경우 결코 용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이런 일들을 위해서 세계 교회의 모든 교회들의 회의들이 사도들의 모범을 따라 교회의 파괴가 아니라 교회의 번영을 위해서 회집한다면 우리는 이 종교회의들을 인정해야 한다.
24항
24항
[일꾼은 일의 대가를 지불 받아야 한다]
모든 신실한 교역자들은 선한 일꾼들로서 자신들의 일의 대가를 받아 마땅하다. 교역자들이 봉급 혹은 자신들과 자신들의 가족을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을 받는 것은 죄악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과 디모데 전서 5장과 그 외의 다른 곳에서 이와 같은 것을 교회가 주고 교역자가 받는 것은 올바른 일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재세례파 사람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짓을 했다. 왜냐하면 이들은 교역활동을 통해서 먹고 사는 교역자들을 정죄하였고 비방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