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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2026.02.03 (화)

와서 보아라

요한복음(John) 1:35 - 1:51

(본문: 개역한글)
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좇는 것을 보시고 물어 가라사대 무엇을 구하느냐 가로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 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 십시쯤 되었더라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묵상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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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개요

요한복음 1장 35절에서 51절은 구속사의 거대한 전환점을 담고 있는 드라마의 서막과 같습니다. 세례 요한의 사역이 정점에 달했을 때, 그는 자신이 주인공이 아님을 선포하며 조용히 무대에서 물러납니다.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에게조차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선언하며 그들의 시선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옮겨놓습니다. 이 장면은 당대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였던 요한의 겸손과, 구약의 모든 제사와 예언이 마침내 성취되는 놀라운 순간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압제 속에서 강력한 정치적 메시아, 즉 '이스라엘의 임금'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이라는 가장 평범하고 멸시받던 곳에서 오셨습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세상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권적인 부르심을 통해 제자들을 모으시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안드레와 베드로, 빌립과 나다나엘은 모두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예수님의 단호하고도 따뜻한 음성을 듣고, 그들의 삶의 방향을 영원히 바꾸게 됩니다. 이 짧은 만남들은 이후 온 세상을 뒤흔들 교회의 초석이 놓이는 순간이었습니다.

본문 해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인간의 열심이나 계획에서 시작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주권적인 부르심과 계시로 시작됩니다. 세례 요한의 증언을 듣고 예수를 따르기 시작한 안드레와 또 다른 제자에게 주님은 '무엇을 구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이 질문은 단순한 숙소를 묻는 질문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 자리한 궁극적인 갈망의 대상을 묻는 질문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찾고 있지만, 그들이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라고 물었을 때, 주님은 '와 보라'고 응답하십니다. 이 응답 속에는 우리의 모든 질문에 대한 해답이 특정한 장소나 교리가 아닌, 오직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동행 안에 있음을 암시합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단순한 초대를 넘어, 인간의 존재 자체를 새롭게 정의하는 권위를 내포합니다. 시몬이 예수님께 나아왔을 때, 주님은 그를 보시고 '장차 게바(베드로)라 하리라'고 선언하십니다. 예수님은 시몬의 과거를 아셨을 뿐 아니라, 그가 앞으로 어떤 존재가 될지까지 결정하셨습니다. 우리의 이름과 정체성은 세상이 부여하는 타이틀이나 스스로 얻어낸 성취가 아니라, 우리를 부르시는 그리스도의 주권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확정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은 우리의 실존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의 선포입니다.

이러한 주권적인 부르심은 때로 인간의 편견과 부딪힙니다. 빌립이 친구 나다나엘에게 메시아를 만났다고 전했을 때,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며 즉각적인 의심을 표합니다. 인간은 종종 자신의 경험과 지역적 한계에 갇혀 하나님의 구원 방식을 재단하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의심 많은 나다나엘을 보시고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평가하십니다. 주님은 나다나엘의 외적인 지위나 출신이 아니라, 그 마음의 진실함과 정직한 실존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솔직한 의심까지도 은혜의 대상으로 삼으시는 분이십니다.

결국 나다나엘이 무너진 것은 예수님의 단 한 마디,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는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던 은밀한 순간을 아시는 그리스도의 전지하심은 곧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참된 임금이심을 확증합니다. 이 고백에 대하여 예수님은 더 큰 약속을 주십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이는 야곱이 벧엘에서 보았던 환상(하늘과 땅을 잇는 사닥다리)의 실현입니다. 그리스도 자신이 바로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유일한 중보자, 곧 '인자'이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 우리는 단순히 한 랍비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문이 영원히 열리는 구속사의 중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이 땅의 작은 사건에서 시작하지만, 그 끝은 영원한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는 데 있습니다.

🙏 기도 제목

우리가 주님을 찾기 전에 먼저 우리를 아시고 부르신 그리스도의 주권을 온전히 신뢰하며, 매일의 삶 속에서 하늘이 열리는 영광을 바라보는 참된 제자로 살아가게 하소서.